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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대만, 동성혼 승리로 가는 길 - 류민희 활동가 인터뷰

최근 일본에서 동성혼 소송의 승리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요. 오늘은 동성혼 법제화 운동과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초국적 연대에 힘쓰고 계신 류민희 활동가를 모시고 관련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최근 일본의 여러 지방법원에서 동성혼이 없는 법률적 공백을 ‘위헌’으로 판결했어요. 헌법재판소가 일괄로 위헌 심판을 담당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네요.
일본의 사법 체계를 먼저 이야기해야겠네요. 일본 헌법 제81조에 따르면 하위 법원을 포함한 각급 법원은 헌법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최고재판소는 모든 법률, 명령, 규칙 또는 처분의 헌법 적합성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종심 재판소이다.”).
이는 미국식 위헌심사구조를 따른 것이에요.  이후 한국의 헌법재판소처럼 대륙식의 별도 헌법재판소를 설치하자는 논의도 꾸준히 있었지만, 번번이 도입이 무산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중요한 인권 보장 메커니즘인 국가인권위원회나 별도의 헌법재판소가 없는 국가입니다.
지방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내리면 곧 최종적인 의미를 갖게 되나요?
설사 지방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다해도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하위 지방재판소의 위헌판결을 유지할지 지켜보아야 해요. 그동안의 최고재판소가 내린 판단의 경향을 볼 때 부정적인 전망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부부의 성씨를 일치시킬 것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민법과 호적법 규정에 대해 2015년, 2022년 두 번의 합헌 판결을 내리는 등 의미있는 위헌 판결을 내리는 것을 주저해왔다. 이는 동성혼 불인정과 함께 가족법의 대표적 차별조항으로 일컬어지는 조항이다.
하지만 2019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부터 제기된 일본 전국 동성혼 소송 운동은 수십 차례의 심문 기일을 통해 동성혼 불인정과 차별의 위헌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게 만들었습니다. 매 기일마다 지역 및 전국 언론과 사회가 주목하는 가운데, 원고, 대리인, 성소수자 운동은 정부와 공개적으로 법정 공방을 합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중적 여론, 법학계의 다수설, 국회 내 움직임은 계속되는 전국 소송 판결에 이미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혼인평등 티셔츠를 입은 류민희 활동가
많은 나라에서 인권운동은 소송을 통해 대중 동원과 조직화(mobilization)를 이끌어 내면서, 단지 법원에서의 소송 결과를 넘는 사회변화를 이뤄냅니다. 좁은 의미의 집단 소송(class action)이 아닌 다수 당사자의 소송(mass action)은 여러 지역과 법관할에서 다양한 당사자를 원고로 하여 소를 제기합니다. 개별 재판마다 법관의 독립성에 따라 어떠한 쟁점이 더 잘 다뤄지거나 안 다뤄질 수도 있습니다. 한 관할에서의 승소는 다른 관할에도 의미있는 선례로 참고됩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일본의 공익소송 방식을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1970년대 공해병 소송부터 최근에는 우생보호법에 의한 장애인강제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참고 日법원, 옛 '장애인 강제 불임수술 정책'에 첫 위헌 결정ㅡ연합뉴스)
당사자와 대리인단이 함께 모여서 재판정에 들어가는 것, 선고날 법정 바깥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렸던 군중 앞에서 펼치는 ‘승소勝訴’ 두루마리 족자, 이 모두는 일본의 소송 운동에서 익숙한 풍경입니다.
2023년 6월 8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선고에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하는 동성혼소송 당사자와 대리인단 (위 트윗)
여러 지방법원이 위헌판결을 했는데요. 일본 의회는 동성혼 법제화에 반드시 착수해야 되는 건가요?
소송과 입법은 어느 국가의 어느 운동에서든 분리된 과정은 아닙니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관련 소송과 헤이트스피치 입법의 관계 또한 소송의 결과가 입법으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소송은 승소와 패소라는 양극의 이분법적인 결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행 과정과 입체적인 뉘앙스가 사회 변화를 추동할 수 있습니다.
일본 “결혼의 자유를 모두에게” 소송 타임라인
2015년 7월 7일 455명의 신청인이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에 일본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내용의 인권 구제를 신청했다. (일본에는 국가 차원의 인권위원회는 없지만 일변련에서 중요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공식적 입장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는 정부나 국회에게 권위있는 해석으로 작용한다. 일변련은 오랫동안 인종적 혐오표현(헤이트스피치)에 대한 입법 의견을 내왔고 이는 조례와 법률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참고 단체진정 사이트)
2019년 7월 18일 무려 4년만에 일변련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13조, 헌법 제14조에 위배되는 중대한 인권 침해”이며 “신속하게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관련 법령의 개정을 해야한다 “고 의견을 밝혔다. 이 의견서를 법무부 장관, 총리, 중의원 의장, 참의원 의장에게 전달했다. (참고 2019년 7월 18일 일본변호사연합회의 “동성 당사자의 혼인에 관한 의견서” 전문)
2018년 위 진정인들을 중심으로 원고 커플을 모아 전국 단위 동성혼 소송을 계획했다.
2019년 1월 동성혼 운동을 전개할 운동단체 마리포재팬(Marriage for all Japan) 출범했다.
2019년 2월 14일 도쿄,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4개의 지방법원에서 13쌍의 동성 커플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2019년 9월 후쿠오카에서 추가 제소).
소 제기의 내용은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 14조(평등권), 헌법 24조(혼인의 자유) 등 헌법의 위반이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별도의 헌법재판소가 없고 일반법원에 직접적인 위헌소송이 불가능하다.
청구 취지 자체는 혼인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이지만, 일본 성소수자 운동이 소송을 시작한 목적은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고자 함이었다.
2021년 1월 18일 도쿄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인 HIV 활동가, 플레이스 도쿄(Place Tokyo) 이사 사토 이쿠오 님이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2021년 3월 17일 삿포로 지방재판소는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을 보장한 일본 헌법 제14조에 반한다는 판결을 일본 최초로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지만 현 상황의 위헌성을 확인한 내용은 일본 성소수자 운동이 의도했던 실질적인 의미의 승소였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21년 3월 27일 도쿄 2차 소송이 시작되었다. 2019년 1차 소송에 더 해서 네 쌍의 원고가 추가로 소를 제기했다.
2022년 6월 20일 오사카 지방재판소, 원고 청구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동성혼 불가능이 위헌이 아니라는 것으로, 삿포로 판결 이후에 나온 후퇴적 판결이다.
2022년 11월 30일 도쿄 지방재판소 1차 소송 결과가 나왔다.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었지만, 동성혼 불가능은 ‘위헌상태違憲状態‘라고 언급되었다. 혼인권에 관한 헌법 제24조 제2항 위반이 최초로 인정되었다.
2023년 5월 30일 나고야지방재판소에서 동성혼 불가능 상태가 위헌이라고 인정하였다. 제24조 제2항 위반에 대한 원고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2023년 6월 8일 후쿠오카지방재판소는 제24조 제2항 위반에 따른 ‘위헌상태違憲状態‘를 인정하였다.
대만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에서 정리한 웹자보
2023년 6월 현재 매 변론기일마다 방청 조직, 기일 이후 유튜브 라이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Call4라는 공익소송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원고 측 및 정부 측 서면, 증거, 판결문을 공개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입법의 흐름
2023년 6월 현재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민법 일부 개정안이 입헌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야당 3당에 의해 중의원에 공동 제출되었다.
2023년 3월 6일 위 법안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후, 민법 일부 개정안(혼인평등법)이 새 중의회에 다시 제출되었다. (참고 https://cdp-japan.jp/news/20230306_5554)
한국과 일본은 (잘 아시는 이유로) 법체계가 비슷한 점이 무척 많습니다. 일본도 한국의 2014년-2016년 김조광수·김승환님의 동성혼 소송처럼 직접 혼인신고를 하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위헌성과 위법성을 다투는 호적 비송(소송이 아닌 간이한 절차)으로도 불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성소수자 운동은 이 대화를 사회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진행하기를 원했고, 소송(‘모든 재판은 공개된다') 형식으로 진행되는 ‘국가배상청구’라는 소송물을 전략적으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참고 혼인평등연대 “삿포로 소송 뒷이야기”)
현재까지 5개 지방재판소에서 1심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 중 4개 지방재판소는 동성혼의 불인정이 위헌 혹은 위헌 상태(일종의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삿포로지방재판소 2021년 3월 17일, 위헌, 도쿄지방재판소 2022년 11월 30일 위헌 상태, 나고야지방재판소 2023년 5월 30일 위헌, 후쿠오카지방재판소 2023년 6월 8일 위헌상태).
특히 최근 판결들은 동성혼의 불인정이 혼인의 자유에 대한 헌법 제14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제24조 제2항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한 점이 의미 있습니다.
모든 소송 자료는 call4라는 공익소송 플랫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양측의 자료만 해도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call4 플랫폼의 ‘모든 사람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사이트)
일본 대중문화에서 동성애는 친숙한 소재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일본에는 원래 LGBT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가 있었나요?
물론 일본은 성소수자의 가시성이나 커뮤니티의 삶, 하위문화의 차원에서 풍부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만화, 영화,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 다양하게 다뤄지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보셨을 것입니다. 소위 “BL” 장르물에서 법적 보호가 없는 동성커플이 불완전입양 제도를 이용해서 서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꽤 오래전부터 보았습니다. 유증문서와 동거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는 관행이 동성파트너십 제도화로 이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병리화 모델에 따라 2003년 제정되어 2004년부터 시행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관련 법(‘성동일성장해특례법’) 외에는 입법부를 통한 의미있는 진전은 없었습니다. 다만 노동, 의료, 교육 등에 관한 개별 부처의 지침과 제도,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동성파트너십 조례 같이 패치워크 진전이 일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대중문화에서만 특이한 존재로 등장하는 ‘선별적 가시성'을 넘어, 보편적 권리를 누려야 하는 주체로서 만화 원작의 <아우의 남편>,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 같은 드라마가 제작 되었는데요. 이는 변화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참고 “니 LGBT가?” 이후, 우린 더 나아갈 수 있다!ㅡ일다)
지역조례를 통해 동성파트너쉽 인정이 인정되기 시작한 흐름이 흥미로워요.
2015년 도쿄 시부야 구, 세타가야 구에서는 동성커플을 결혼에 상당하는 관계로 인정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합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가정동반자(domestic partnership) 제도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제도는 법률상 결혼 같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지역 내 사업자들이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거 임대 계약이나 병원 면회 시 배우자와 같은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지요. 해당 제도 도입 이후 통신 회사, 병원, 생명 보험 등이 동성파트너십 증서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시부야 구 파트너십 제도 (일본어), 세타가야 구 파트너십 제도 (일본어))
현재 일본에는 인구의 65%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전국 328여개의 지방자치단체에 동성파트너십 등록제도가 존재합니다.
2023년 연초 시점의 일본 전국 동성파트너십 제도화 인포그래픽
그렇게 변화한 사회 분위기가 동성혼 법제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한편 최근 ‘일본의 차별금지법’으로 언론에 소개된 LGBT 이해증진법 또한 의미와 한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더라고요.
일본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은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J-all’이라고 불리는 LGBT법연합회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리포재팬과 제이올의 활동가들은 인적구성이 많이 겹칩니다) (참고 LGBT법연합회 홈페이지)
일본 성소수자 운동은 2020년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과 같이 일본이 세계 수준과 견주어지는 순간을 운동의 한 모멘텀으로 겨냥해왔습니다. 2019년 제기된 동성혼 소송도 이 시기를 의식한 것이지요. 물론 코로나 판데믹 위기 때문에, 당초 예상했던 효과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는 2023년 5월 개최된 G7 정상회담도 하나의 모멘텀이었습니다. NHK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G7 중 유일하게 국가가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합법 같은 제도로 성소수자와 동성 부부를 보호하지 않는 국가”입니다. 해당 법안은 이러한 시기를 전후해서 통과된 것입니다. ) (참고 G7과 병행하여 개최된 Pride7)
오래 전부터 일본 국회 안에서 여러 번 논의되던 차별금지법에 관해서 자민당을 제외한 정당들 사이에서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일본 입법 과정의 전형적인 마무리는 (보수 여당인) 자민당에 의한 후퇴적(‘watered-down’) 입법입니다. 이번에도 주요 쟁점에서 급격히 후퇴한 수정이 여러 번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6월 16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 "성적 지향 및 젠더 아이덴티티의 다양성에 관한 국민의 이해 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부당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하며 국가가 이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습니다. 한편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유의하는 것으로 한다”는 독소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남겨두었습니다. 일본 성소수자 운동은 당초 요구한 원안과 큰 차이가 있는 이 법을 받아들고 복잡한 분노의 심정이지만, 독소적 표현이 앞으로 진행될 차별시정 정책들에 대해 장벽이 되지 않도록 더 투쟁해나갈 것을 다짐하는 상황입니다. (참고 J-all의 성명 전문)
대만의 경우는 어떤가요?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세 가지 입법안이 있었잖아요.
10개국의 동성결혼과 결합법에 대한 3년간의 연구 끝에 2013년 대만의 반려맹(대만반려권익추진연맹, TAPCPR)은 세 가지 법안을 공개합니다. 당시 3개 법안 모두를 통과 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논의 과정을 통해 변화를 꾀했던 것이죠. (참고 반려맹의 3가지 민법 개정안 전문 혼인평권 (동성결혼을 포함), 파트너십 권리, 비혈연, 선택에 의한 가족구성권)
이 중 혼인평권 법안이 2013년 최초로 발의되고, 2016년에 다시금 발의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반려맹이 2013년에 제기하였던 동성혼 불수리에 대한 행정소송이 상소를 거듭하여 2015년 대만 사법원에서 공개변론기일이 열렸습니다. 이후 2017년 5월 24일 위헌 결정이 나오기까지 몇 년 간의 입법과 소송(그리고 이후 불행한 주민투표까지 가는 소동까지)을 통한 사회변화의 지난한 과정이 일단락되게 됩니다. (참고 <무지개의 빛깔들, 가족의 그늘: 대만의 혼인평등과 친밀성의 민주화를 향한 여정>, 반려맹 영문 홈페이지)
2019년 타이완 프라이드 중 TAPCPR 트럭에 오른 류민희 활동가. 당시 대만 동성결혼의 남은 과제였던 ‘외국 배우자와의 결혼에 대한 인정’이 주제였다.
대만에서 동성혼이 허용된다는 놀라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가 여전히 생상해요. 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 법제화를 이뤄낸 비결은 무엇일까요?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께는 대만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직접 운동을 기록한 『비 온 뒤 맑음』(사계절, 2022)이나 대만 연구자들의 논문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 진전이 양안(대만-중국) 대치 상황이라는 지정학적 조건과 대만의 국제적, 국가적, 사회적 조건이라는 맥락에서 때마침 열린 정치적 기회를 잘 활용한, 역사성과 저력이 있는 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운동의 역량이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성평등 교육 같은 이전 시기의 제도적 성과로 풀뿌리 교육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대만의 대표적인 성소수자 단체인 통츠 핫라인(Tongzhi Hotline)은 2004년 제정된 성별평등교육법(性別平等教育法)을 바탕으로 개별 학교에 접촉하여 최대한 많은 현장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한 해에는 500여번의 학교 강의를 통해 3만여 명을 만났으며, 이러한 강의는 통츠가 교육하는 자원활동가 두어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대만 단체들은 커뮤니티에 관한 세밀한 감각을 갖췄고, 조직 능력도 뛰어납니다. 동성결혼은 단지 이 시기의 하나의 의제였고, 동성결혼이 아닌 다른 의제였더라도 분명 성공해냈을 것입니다.  어려운 투쟁을 승리로 이끈 역량은 고스란히 운동에 남습니다. 반려맹은 완벽한 평등에 이르지 못한 대만 동성혼에 남은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운동을 이어가면서, 트랜스 성별 변경의 수술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소송과 운동 또한 진행했습니다.
이제 대만에서는 동성결혼 운동을 주도한 연대체 무지개평등빅플랫폼을 중심으로 내년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을 소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관해서는 선배(?)인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라고 했으니 저희도 기꺼이 도와야죠.
대만도 이제 차별금지법으로 가는 흐름이네요. 동성혼 법제화가 다른 성소수자 권리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되겠어요.
동성혼이나 차별금지법 뿐만 아니라 어떠한 법제도적 평등은 표현적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실질적 권리를 훨씬 더 넘어섭니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 대만 행정부 주도의 다양한 정책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생활 조사에 대한 결과가 올해 7월 발표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동성혼 이전보다 두 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대만 행정부 성평등위원회가 매년 주최하는 성평등 국제포럼에 참가한 류민희 활동가(2019년 10월)
물론 최근 여러 국가에서 반성소수자 법안이 발의되는 등의 흐름을 보면 항상 기회를 엿보는 반동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등에의 과제는 끝이 없고 예상치 못한 퇴행도 찾아옵니다. 일시적 후퇴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평등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에 기반한 투쟁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아시아는 보수적이라는 막연한 통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최근 이웃 국가들의 변화를 보면 한국이 그러한 벽을 넘어 동성혼 법제화로 나아가는 것도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권리 보장의 후발(?)국가가 가지는 예상치 못한 장점이 있다면 이미 많은 실증적 증거가 있으니 사회적 오해의 시간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요? (인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소도미 법을 폐지하는 판결이 나온  직후 동성결혼 소송에 돌입했습니다.) 한국이 이 교훈을 제대로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전세계 34개국에서 법률혼을 한 동성 부부들이 이미 아시아의 여러 곳에 살고 있음에도 선별적으로만 권리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비균질함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없습니다. 그저 정의의 지연만 있을 뿐이지요.
2023년 동성결혼 지형은 불과 몇 년 전과도 다릅니다. 다른 친구들이 분명 삶의 선택과 권리로 온전히 누리는 걸 이미 목격하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국가의 거부와 불인정’으로 경험하는 프라이드의 상처와 모멸감도 큽니다.
일본, 홍콩, 태국, 네팔, 인도 등지에서 매일이 멀다하고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뉴스가 전해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아시아 동료들이 있습니다. 이 많은 동료들을 얻게 된 것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동성혼 운동을 하는 아시아 동료들은 (한국처럼) ‘소도미법’(특정 성행위를 규제하는 법) 폐지, 동성결혼 인정, 차별금지법 제정,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평등한 교육 등 산적하고 다양한 성소수자 법정책 문제에 개입합니다. 결국 소송, 입법, 캠페인, 소셜미디어, 직접행동 등 운동방법론의 기본은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권리 운동은 그 자체가 목표이면서 사실은 그를 더 넘은 과정이자 수단입니다.
우리 커뮤니티의 열망을 잘 조직하여 이 목소리를 꼭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듣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만드는 변화를 더 크게 조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