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며느리’가 불평등한 가족제도에 맞설 수 있을까? 『가족각본』(김지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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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며느리’가 불평등한 가족제도에 맞설 수 있을까? 『가족각본』(김지혜, 2023)

‘남자며느리’가 불평등한 가족 제도에 맞설 수 있을까? 『가족각본』(김지혜, 2023)

누구를 위해 우리는 가족을 연기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에는 가족이 있다. 가난하다면, 다시 말해 ‘부모 찬스’가 없다면 계층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존엄과 자유를 확보하기 어려운 세상인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만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차별적인 성역할이 재생산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령 여성들은 여전히 가족 안에서 훌륭한 ‘며느리’가 되도록 교육받는다. 남편에 대해 지고지순한 아내이자, 가족 살림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탁월한 가족경영인이 되기를 기대받는다. 아름답게 연애해야 하고, 아이를 낳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야 하며, ‘정상적인 가족’을 꾸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일한 여성 위인으로 오만 원권 지폐의 초상화에 신사임당이 들어간 것도 실은 그가 ‘현모’였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김지혜는 『가족각본』에서 이런 차별의 대물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다. 가족의 정상성을 굳건히 지켰을 때 이득을 보는 건 개별 가족구성원들이 아니다. 사회보장제도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역할을 각 가정이 대신하게끔 하면서 국가는 예산을 아끼는 동시에 사회는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각 가정이 짊어진 무게 속에서 개별 구성원들은 그다지 원하지도 않는 가족각본에 맞춰 연기하느라 고통을 받는다. 가족 질서가 해체되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며 누군가는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을 중심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여러 불평등은 물론이거니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는 낡은 가족 제도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논할 때이다. 이미 많은 청년들은 낡은 가족 제도를 더이상 따르지 않겠다며 ‘정상 가족’의 삶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가족각본』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며느리가 남자일 수 있냐”며 동성혼을 반대하는 구호는 오늘날 가족 질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는데, 어쩌면 ‘남자며느리’의 가능성이야말로 가족제도의 불평등함을 문제제기할 수 있는 자원일 수 있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 각본을 만드는 성소수자 가족

『가족각본』은 가족을 중심으로 대물림되는 불평등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여기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책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동성 커플이나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라는 문제제기가 기성의 가족 제도에 어떠한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낡은 가족 제도를 변화시킬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또,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이성애 혼인 중심의 가족 제도가 이미 불평등한데 단순히 동성혼을 제도화하는 건 불평등한 제도에 동화하기에 불과하다는 염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동성 커플이나 트랜스젠더가 구성한 가족이 각 성별에 부여된 가족각본을 혼란스럽게 흔들어놓는데, 이는 새로운 가족 관계를 제도화하는 일이 가족구성원에게 부과된 성역할 혹은 가족각본을 재설정하는 계기인 셈이라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소수자는 가족 제도의 근간이 되는 성별 규범을 흔드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러한 재분배의 상상력이 평등한 생활공동체를 그려볼 수 있는 계기를 대중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가족 질서를 해체하는 위협의 상징이 된 ‘남자며느리’야 말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하게끔 한다. 어쩌면 동성혼이 법제화된 이후 ‘남자며느리’가 실제로 가족불평등에 저항하는 유의미한 거점이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일일 수 있다. 혹자는 동성혼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은 그 자체로 차별이지만, 동성혼을 제도화하는 것이 가족과 관련한 여러 불평등과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바꾸는 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또한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남자며느리’의 가능성이 평등한 가족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두면서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게끔 하는 자원으로서 동성혼 법제화가 의미있고 가치있는 진전이라고 본다.

남자며느리’는 불평등한 가족 제도에 맞설 수 있을까?

남자며느리, 여자사위, 결혼할 때는 여자였지만 어느새 남자인 남편, 어렸을 때는 아빠였는데 어느 새 엄마가 된 엄마. 이러한 상상력(동시에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삶이자 현실)은 가족 제도가 내재하고 있는 견고한 가족역할과 성별규범을 때때로 허물어뜨린다. 다만 모든 퀴어가 본래적으로 성별규범에 대한 투사와 같은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퀴어는 억지스럽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성별규범에서 피어난 존재들이다. 어쩌면 이들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기존의 규범을 강화한다고 의심하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아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욱이 중요한 사실은 성소수자 가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지와 무관하게 기존의 가족각본이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 평등한 관계맺기를 만들어가기 위한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기존의 가족각본과 나름의 다양한 방식으로 불화하는 과정 속에서 대안적인 가족각본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가족질서 해체의 상징이 된 남자며느리들이 진 무게가 크다고 하겠다.
공개적으로 게이 커플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유튜브 채널 망원댁TV의 킴과 백팩 커플 (사진: 망원댁TV 제공)
동성혼이 법제화되거나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는 것 모두 중요한 일이다. 정상가족을 규정하고 있는 건강가족기본법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 세습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불평등에 대응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폭넓게 인정하고 인식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사실은 걱정하고 우려만 하고 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확산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왜 우리의 삶이 불평등한지에 대해서, 이 불평등이 결코 당연하지 않고 우리에겐 불평등한 현실을 바꿀 권리와 힘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공유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가족각본』과 같은 대중서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작성: 심기용 (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