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역사의 잔재이자 국가 폭력인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합시다.
정성조(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안녕하세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정성조입니다.
낡은 역사의 잔재이자 국가 폭력인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합시다.
이번 주는 국제성소수자혐오차별반대의 날이 있는 주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소수자 인권의 수많은 진전을 마주해왔습니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군대입니다. 군대에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러한 경우 범죄자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이러한 군형법 추행죄는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아픔을 담고 있는 낡은 잔재입니다. 이 법은 1962년 군형법 제정 당시 미국 육군 형법 상의 소도미법을 그대로 베껴왔던 것이나 실제로는 이성 간의 추행을 처벌하는 데 간접적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실질적으로 남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데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판결에서 군형법 추행죄의 판결 요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심판대상조항 중 일반조항에 해당하는 ‘추행’이란 정상적인 성적 만족 행위에 대비되는 다양한 행위태양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그 구체적인 적용범위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동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이 말하는 ‘그 밖의 추행’이란 강제추행 및 준강제추행에 이르지 아니한 추행으로,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며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성적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때 헌재가 염주에 두고 있는 것은 보수적이고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규범, 질병에 대한 이미지와 연결된 동성애혐오, 안보의 문제로 동성애를 지적하는 반동성애 담론의 확산 등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동의하는 규범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낡은 것입니다.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군대 내 인권 문제 개선을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지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북게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수사를 동성애에 덧입히기까지 했습니다.
군형법 추행죄 폐지를 둘러싼 투쟁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마주했던 것은 사법부와 국방부만은 아닙니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뿐만 아니라 군전역자 및 보훈대상 단체는 군대 내 동성애 ‘문제’가 본격화된 이후 국가와 민족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때 동성애자 군인은 단지 존재만으로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것처럼 그려지기까지 합니다.
군형법 추행죄는 단순히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것보다 넓은 정치적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 권력은 어떤 것이 당대의 도덕 관념에 준하거나 반하는 것인지 판단하여, 특정한 성적 위계에 법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재판부는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의 기준을 판단하는 중립적 위치로 스스로를 놓지만, 우리는 이러한 판결이 사회적 편견을 법적 언어로 단순히 번역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여론을 하나의 사실로 확정하는 법적, 정치적 폭력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과거 동성애 처벌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를 모두 삭제했고,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한 과거에 대해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군형법 추행죄가 동성애를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담론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면서 동성애혐오 담론의 순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형법 추행죄 폐지라는 문제는 단지 법적 쟁점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책임에 관한 문제임을 분명히하고, 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