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관련 병역 기준 개정안 철회 요구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기진 운영위원
변화에 역행하는 국방부 정책 기조 규탄한다
국방부가 줄곧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정책 기조를 내놓고 있다. 최근 국방부는 <병역신체검사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여기에는 ‘6개월 이상의 규칙적인 이성 호르몬치료’를 기준으로, 성별 불일치를 겪는 트랜스젠더의 병역판정을 4급 보충역과 5급 전시근로역으로 나누는 방안이 포함된다. 그동안 트랜스 여성에게는 5급(군 면제) 와 7급(재검사) 판정만이 내려져 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4급 보충역-사회복무요원 판정의 근거를 신설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지않은 트랜스 여성에게 남성으로의 군복무를 요구하는 국방부 입법예고는 시대에 매우 뒤떨어지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판정 기준에 ‘호르몬 치료’를 신설하는 것은 판정을 앞둔 트랜스젠더에게 외과적 치료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성별 불일치 혹은 불쾌감은 선천적으로 자신의 지정 성별이나 성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임상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 진단할 수 있다. 진단 기준에도 ‘신체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고, 이미 정밀심리검사와 정신걱강의학과적 진단 및 의사소견과 같은 자료로 충분히 군복무의 어려움을 밝힐 수 있는 트랜스 여성에게, 성별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불필요한 외과적 치료를 요구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이다.
실제로 성별 불일치는 2018년에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미국정신의학회에서도 이는 정신장애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트랜스 여성이 성별 불일치만으로 병역판정을 위해 재신체검사를 신청했을 때, 그 자체로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성이니 군복무가 어렵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자기 의사와 다양한 환경 조건 등을 고려해 호르몬 치료 및 성별 재지정 수술을 결정한다. 특히나 병역판정이 이뤄지는 20대 초중반에 이러한 규칙적인 치료가 가능한 재정적 여유와, 가족적인 지지와 지원, 그리고 신체 변화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모두 마련되어 있고 이를 전부 감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트랜스 여성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병역 문제는 높고 길게 둘러쳐진 철조망과도 같다. 넘어가자니 남성중심적인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해 찔리고 다치다 떨어질 것이 두렵고, 피해가자니 준비하고 감내해야할 변화들이 너무 많다. 건강하게 전역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고, 이렇게 쫒기듯이 나를 바꿨을 때의 그것이 진짜 내 모습일지도 그려지지 않는다.
군복무는 한국 청년에게 있어 병역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언제나 한번쯤 고민해보는 문제이다. 그러나 주변의 트랜스 여성 친구와 동료들을 봤을 때 그들이 사회에서 항상 요구받는 ‘증명’의 문제와 고민은, 군문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털어버릴 수 있을만한 속성의 것들이 아니다. 국방부가 더 이상 미숙한 판단으로 성소수자 청년의 삶을 더 보채거나 여기서 당장 증명하라고 윽박지르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의 자신을 모두 걸어야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법 개정으로 인해 변화할 국민의 삶과 그들이 처할 입장을 다 담지 못하는 입법은 당연히 ‘개악’이라고 할 만하다. 오늘 우리는 국방부의 <병역신체검사규칙> 개악 시도를 규탄하고 나아가 병역 판정과 군복무 전반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병역신체검사규칙 개악 규탄한다!
트랜스젠더 인권 보장하라!